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클럽 경력 (문단 편집) === 1963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18세의 나이에 플루미넨시 1군 팀에 데뷔하여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히우-상파울루 컵에서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CR 바스쿠 다 가마, CR 플라멩구, 보타포구 FR과 같은 강팀들을 누르고 3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만 18세에 불과한 라이트백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의 활약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고, 브라질 각지의 언론이 아우베르투를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자우마 산투스]]의 뒤를 이을 신동이 나타났다면서 브라질 전역에서 난리가 났다. ||[[파일:1963AGazetaEsportivo.jpg|width=100%]]|| ||1963년의 대활약을 통해 브라질 언론 '아 가제타 에스포르치부'의 메인 페이지에 얼굴을 실은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우베르투는 1963년 4월 [[팬아메리칸 게임]]을 위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고, 네 경기 모두에 출전하여 미국을 10-0으로 눌러버리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10대의 나이에 제법 큰 대회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파일:1963AlbertowithMarcioandProcopio.jpg|width=100%]]|| ||팀 동료 프로코피우, 마르시우와 함께|| 여튼 아우베르투는 엄청나게 주목받으며 스타덤에 올랐고, 수많은 브라질 선수 중에서도 당시 장래가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첫손에 꼽혔다. 팬아메리칸 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히우지자네이루 주립 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 플루미넨시는 플라멩구와 승점 1점 차이로 2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